쨘- !
드디어 나의 첫 호주 회고록!
다사다난도 모자라 험난하기만 했던 아무런 준비 없었던 나의 호주행.
첫 집도 못구해서 난린데 의심은 많아서 애먼 부동산 사장님만 의심하다 집이 나가버린 이야기.
트라이얼이란 트라이얼은 다 잘리고, 어렵게 구한 알바마저도 잘렸던 이야기.
야망을 갖고 시작했다가 자꾸 예상치 못한 길로 자꾸자꾸 빠졌던 막무가내 적응기.

한글이 신기해서 찍은
나의 첫 호주행은 영국으로부터의 도피였다.
겨울부터는 파란 하늘을 거의 볼 수가 없어 멀쩡한 사람이라도 우울증 걸리겠더라.
첫 호주행으로 브리즈번행 티켓을 끊은 이유가 호주에서 제일 날씨 좋은 도시였다는 이유때문.
이 정도면 얼마나 영국에서 날씨로 진절머리가 났는지 말안해도 알겠지. (물론 다른 이유들도 있었다.)

브리즈번 임시 숙소 근처
호주에서의 알바는 특이하게 면접도 보고 실제로 한두시간 매장에서 일해보는 "트라이얼"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처음엔 이 개념을 이해못해서 하는 족족 잘리고.. 일도 못구하고 시간만 버렸다.
또 12월에 아무런 준비없이 갔기에, 하필 크리스마스 시즌 때문에 일이 더 안구해졌다.
이력서 처음 돌릴 때 직접 매장가서 나 일 구하고 있는데 내가 가진 스킬 이렇다, 연락 달라 어필하는데, 처음에 진짜 그걸 어떻게 하나 싶었다. 팬데믹으로 사람 만나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 시기였는데. 근데 다들 너무 친절하게, 일 안구하고 있으면 심지어 일 구하는 매장이나 웹사이트 직접 포스트잇에 적어주면서 도와줬다.브리즈번피플....
가진 돈은 증발해가고 마음은 급해져서 무슨 일이라도 상관 없어 스시집 트라이얼을 갔다가 설거지를 맨손으로 한시간 하고 손 느리다고 잘림ㅎ
그래서 왜?? 이유라도 알 수 있을까요? 트라이얼에선 대체 뭘 봐요? 물어보니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상세하게 알려주더라. 열심히 하는 태도와 의지를 본다고. 뻔한 소리지만 그 뒤로 엄청나게 열심히 하겠다는 태도를 어필하고 다니니 결국 어렵게 일이 구해졌다.

여기 버블티 아직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버블티
한번은 생과일주스 가게 트라이얼을 갔는데, 메뉴 못외워서 얼타고 있는게 아마 손님한테도 다 티났을듯.
어떤 손님이 나한테 와서,
"You have a beautiful smile."
이러고 가셨다 ㅠㅠ 그리고 다른 손님 몇몇은 너 지금 잘 하고 있어! 고마워! 이러고 가셨다. 그땐 정신 없어서 그냥 지나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사소한 부분들 덕에 미소를 잃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힘들고 어렵다가도 탁 트인 파란 하늘 보면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호주 첫 친구 프랑스에서 온 니논 - 크리스마스 한상
집은 어떻게 구했나면,
정말 싸고 괜찮은 쉐어하우스를 페북에서 찾았는데 혼자 아무것도 모르고 가서 사기 당할까봐 너무 걱정됐다. 스캐머한테 연락도 오고 (수법이 너무 저급해서 금방 눈치챘지만) 그래서 부동산 사업자 번호랑 실제로 있는 사업체인지 웹사이트에서 알아보고 그거로도 성에 안차 사장님 직접 만나뵙게 해달라고 했다. (누가봐도 사장 나오라그래!!)
어렵게 만나긴 했는데, 자기 사업자 번호까지 물어보는 인간은 첨봤다며 자기랑 계약하기 싫으면 그냥 하지 말라고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어이가 없었겠지.. 내 입장도 좀 이해해달라고 하긴 했지만,, 뭐 우째, 놓친게 너무 아까워서 백팩커스 돌아가서 혼자 몰래 눈물 훔치고 있는데 같은 방 쓰던 어떤 프랑스 여자애가 말 걸어서 수다 좀 떨고나니 또 힘을 얻었던 것 같다.
며칠 뒤 다른 백팩커스로 옮겨야 하는 떠돌이 처지라 며칠동안 같은 방 썼던 유럽 친구들한테 인사하면서, 언젠가 어딘가에서 친구를 사귀면 주려고 준비해놨던 선물 박스에서 홍삼캔디와 마스크팩 한장을 그 프랑스 친구에게 건넸다. 홍삼캔디는 낫뱃이라고 했지만 마스크팩은 받고 너무 좋아하더라.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서려는데, 자기 집 구했다면서,, 옆방이 비어있던데 너도 관심있으면 집 한번 보러갈래? 내가 부동산 관계자 연락처 알려줄게.
그렇게 우리는 바로 옆방 살며 같이 울고웃는 플랫메이트가 되었다.

12월의 브리즈번
첫 잡으로 아파트 청소를 했는데, 출근이 아침 6시였다. 여름이라 아침 5시면 해가 중천에 떠있어서 버스가 있을법도 한데 없어서 아파트까지 30분 걸어서 출근하고 돌아올 때 버스탔다. 이어폰으로 라디오 들으면서 혼자 하는 일이라 어렵진 않았지만, 무거운거 들어야 되고 덥고 운나쁘면 왕방울만한 바퀴벌레나 구더기도 봐야한다. 물론 운 나쁘면....
투잡으로는 근처 QUT 다니는 중국 유학생들이 일하는 버블티가게에서 일해서 크리스마스 이브에 초대 받아서 훠궈도 먹고 게임도 하고 파티를 나름 즐겼던 것 같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도 저들과 같은 호주 유학생이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음. (워홀로 딱 1년만 있다가 돈 왕창 벌어서 미국 유학가려고 했던 나의 방대하고도 거품같은 꿈이여..)
세번째 잡은 스시집 홀서빙이었는데, 한달만에 잘렸다.
왜냐, 실수를 너무 많이 한다고 ㅎㅎㅎㅎ
지금은 빠릿빠릿하고 성실하다는 피드백을 많이 듣지만 저땐 일머리가 없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한국에서도 알바를 해봤지만 해고를 당해본적은 없는데,
인건비가 비싸고 워낙 워홀비자받고 알바하러 온 사람들이 많다보니 고용과 해고가 참 자유롭다. ^^
이때 한번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고라는걸 당해보고 정신이 번쩍 들어 그 뒤로 무슨 일이든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집게사장한테 fired 된 스폰지밥
하지만 인생은 늘 예상한대로만 흘러가진 않는다고 했던가,
짧디짧은 브리즈번에서의 삶은 막을 내리고, 시드니에서도 머물며 호주에서 총 2년의 시간을 보냈다.
호주에서 보낸 2년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미국 이민자들과는 또 사뭇 다른 호주 이민자들의 삶들도 엿보고, 나 자신과 적나라하게 마주해야 했던, 그래서 괴롭기도 했지만, 더욱 지혜로워질 수 있던 값진 계기가 되기도 했다.

호주에서 먹는 찐마라탕 - 양궈푸
좋은 인연들도 참 많이도 만났다. 서로 일하다가 힘든 날 보내서 같이 울고 웃었던 프랑스 친구 니논, 나와 가장 긴 시간을 함께 했던 시드니 베프 카롤리나, 같은 집에서 지지고 볶고 하다가 서로 챙겨주고 친해졌던 듬직한 요정 언니들. 직장에서 만났던 천사들.
다른 건 몰라도, 어딜 가든 고마운 인연들은 꼭 한명씩은 만나게 되어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럼 마라탕 엔딩 -!